김미정

 

“40년 동안 동두천에서 변하지 않은건 무엇인가요?”

“7월 4일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동두천 밤하늘에 불꽃이 가득한 날 이예요. 바로 미국 독립기념일이죠. 아마 보산동 근처에 사시는 분이면 미국 독립기념일이라는 사실은 몰라도 7월 초 쯤에 불꽃놀이를 한다는 건 알거라 생각해요. 저는 동두천의 불꽃놀이를 요즘 대학생 친구들이 하는 말에 비유하고 싶어요. 4월에 피는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래요. 저에게 7월 불꽃은 기말고사였어요. 중학교 때 문화생활이라곤 학교에서 영화 보러 가는 게 전부였는데 저에게 기말고사 기간에 보는 불꽃놀이는 1년 중 가장 기다려지고 화려한 문화 생활 이였지요. 어릴 때 싸릿말에서 살았는데 언덕진 동네라 그 날만큼은 서울 야경 부럽지 않은 뷰를 즐길 수 있었어요.” 

“지금이야 축제나 행사에 가면 개폐막식에 흔히 사용하는 효과지만 그 때는 그게 어찌나 아름다웠는지... 지금도 7월 그 무렵이 되면 시험공부하려고 책 펴놓고 9시 불꽃놀이를 기다리던 제 중학교 시절이 생각나요.”

 

글 서희은

이예빈

 

“제 가족을 소개하자면 모두 10명이예요. 그중에서 4명이 동생입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 삼촌, 할아버지, 할머니와 제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아빠는 회사 일을 하시고 엄마는 집안일을 하십니다. 신기하게도 저를 포함해서 남자 여자 남자 여자 남자 순으로 낳으셨어요. 엄마, 아빠는 40대시고 할머니는 83세이시고 할아버지, 삼촌은 모르겠고 예인이는 12살이고 예현이는 9살이고 예신이는 5살 예강이는 2살이 되었어요. 저희 가족의 특징은 시끄럽습니다. 하지만 장점도 있습니다. 대화할 사람이 많고, 심심하지가 않습니다.”

​글 안창숙

김태윤


제 삶의 3분의 2는 그림과 함께 한 세월이에요. 첫 직장은 애니매이션을 다루는 그림책 파트에 근무했었어요. 본래 미대에 가고 싶었던 꿈이 있었기에 그리는 직업에 만족했다고 할까요. 그 후 본격적으로 붓을 잡고 탱화와 서양화를 그리다 민화를 만났어요. 민화 특유의 옛스러운 정서에 홀딱 빠지게 됐죠. 탱화와 민화는 장르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강한 색채가 저와는 맞지 않는 걸 느꼈죠. 그래서 색채를 가다듬어 은은하게 도드라지는 나만의 민화를 만들어가고자 노력해요. 많은 물감(색)을 많이 만지며 내가 원하는 칼라로 나만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시안으로 사물을 그려 낼 때의 성취감은 말도 다 못하죠. 신사임당이 그녀만이 표현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렸다면, 이 시대의 나는 현대적인 민화를 그리고픈 다짐으로 나만의 민화와 동거를 하고 있어요. 
아마츄어라는 타이틀을 벗어나 프로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창작이 빚어내는 감래는 얼마나 고된 작업인지 이런 마음을 그림 속에 담겨진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글 문선정

코코​

제 이름은 코코입니다. 엉덩이 항문 근처에 근종이 생겨 병원에 다녀왔지요. 동두천에 통일동물병원이 있는데, 우리같은 동물들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는 곳이지요. 지금 저는 9살이고 지난 2년 전 동두천에 있는 새주인을 만났지요. 옛주인이 임신을 했는데, 저로 인해 힘들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입양결정에 동의했죠. 그 결정에 후회하지 않아요. 지금 함께 사는 가족은 한 엄마가 대학생 딸과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데리고 사는 가정인데, 저를 한 가족처럼 잘 대해주고 있지요. 저는 주로 큰 딸과 함께 지내는데, 큰 딸 덕분에 병원에 오게 되었지요. 엉덩이 염증부위가 터져 구멍이 생긴 것을 발견해 주었거든요. 주사약 맞는 일은 정말 싫은데, 큰 딸이 더 무서워해 제가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지요. 용감하게 주사약 두 방을 맞았지요. 얼른 병이 낫기를 바랄뿐입니다.

 

글 김현호

“광암동 와서 고생 무지하게 했지. 젊었을 때는 미군들하고 양색시들 빨래 해 주고 살았어. 그때는 여기 흐르는 동두천에 물이 많았거든. 겨울이면 꽁꽁 언 물을 큰 돌을 던져 깬 다음에 그 얼음물에서 빨래를 해야 했지.”
“장갑도 없이요?”
“그때 장갑이 있나, 그냥 맨손으로 했지. 그런데 겨울은 빨래하는 것보다 말리는 일이 힘들었어. 연탄난로 때서 말리고 했지. 군복이 좀 무거워? 그거 짜는 것도 일이었지. 내가 이 마을에서 제일 처음으로 짤순이 쓴 사람이야. 한일짤순이라고 그때 처음 나오기 시작했거든. 그때 나는 일을 많이 받았거든. 그래서 한일짤순이를 3개나 샀었지.”

 

​글 박정순

“예전에 비하면 이웃과의 정이 많이 없어졌어요.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서로의 주장이 너무 세다보니, 서로 이해하는 노력들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마을의 젊은 양반들이나 주민들이 서로 화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가화만사성이라고 하죠. 저도 집안에서 불화가 있으면 바깥일을 해도 그날 일이 잘 안 되는 걸 많이 느꼈거든요. 가정이 우선 화목하고, 마을도 서로 화합하는 것이 서로의 발전을 위해 좋아요. 화합하기 위해선 서로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가장 먼저 필요합니다.”
“요즘 지내시기가 어떠세요?”
“내가 7남매 중 여섯째예요. 남자는 나 혼자고, 다 누님이고, 하나는 누이동생, 우리 어머니가 나를 마흔에 낳았어요. 근데 그 많던 우리 누님들 다 세상 뜨고, 이제 누이동생까지 세상을 떴어요. 나도 허리 수술 두번 하고 나니까 몸이 예전같지 않아 많이 의기소침해졌죠. 지금 마음은 마치 날개를 다친 독수리 같아요. 상공을 훠이훠이 날아다녔는데, 이제는 날개를 다쳐 날 수도 없는 그런 심정이랄까.”

 

​글 박정순

김담영 

"제 꿈은 원래는 군인이 되고 싶었는데 중 3학년 때 토요일마다 '꿈의 학교' 다니면서 바텐더, 바리스타 쪽에 관심이 생겨 관광과에 들어왔어요. 학교생활은 활동 위주라서 재미있기는 한데 꿈은 다시 바뀌었어요. 역시 저는 군인이 좋아요. 그래서 9월에 일곱 살 때부터 중2까지 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어요."

 

글 문두래

광명스님

"스님 목표는 오시는 분들을 부처님으로 생각하고 더 따스하게 들어줘야겠단 거야. 우리가 사는 집이나 수행처는 중요한 게 아니고 오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거든. 요즘은 먹고살기가 힘들고 돈을 벌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나, 실제론 지친 사람들이 많이 오지. 오는 사람의 마음을 잘 다독거려서 그 사람들이 용기를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잘 할 수 있게 등 떠밀어 줘야지."
“새해가 되면서 부처님께 인사하러 많이들 오시잖아요. 스님께서 덕담 한마디 해주세요.”
"언젠가는 모두 죽잖아요. 죽는 순간에는 우리가 가졌던 거 다 놓고 가니까 지금 만나는 사람, 먹는 차, 같이 이야기 하는 공간 참 소중하기 때문에 많이 느끼고 꽉 잡고 한 해를 살았으면 좋겠어요."

 

​글 구하운

“내 나이 칠십에 암이 걸렸어요. 수술하고 항암치료 하는 중에 또 중풍이 왔어요. 그러니 죽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다가 여기 광암동이 공기 좋고 풍경도 좋다고 해서 여기로 온 거에요. 벌써 17년이 지났네요. 지금은 87살이니. 여기가 참 공기가 좋았는데, 요즘은 마음이 안 좋아. 발전소 때문에 시커먼 연기가 올라가는 걸 보면, 경관도 좋지 않고, 그래서 마음이 아파요.”

 

글 박정순

“베풀고 사는 게 좋아요. 나도 어렵게 살지만, 그래도 살만하니까, 복날이면 마을회관에 삼계탕 해 드시라고, 돈봉투를 보태기도 하고, 마을신문 만드는데, 기금도 내고 그랬죠.”
“넉넉하지 않으신데도 이렇게 남에게 베푸시는군요.”
“돈이 많아야만 베푸나. 돈 많이 만진다고 부자 아니고 돈 쓴다고 거지 되는 것도 아니에요. 베풀 땐 베풀어야 해요. 돈 가지고 얄밉게 굴면 못써. 또 내가 돈이 떨어질 때쯤이면 우리 조카들이 돈을 줘. 난 자식이 없으니까 조카들이 내게 잘하지.”

​글 박정순

주최 : 동두천 문화원 |주관 : 동두천 생활문화센터 | 후원 : 경기문화재단

진행 : 시민기획단 두드림두들러  010-2570-6254   ddcliving@naver.com

이 사이트는 경기 생활플랫폼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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